2009. 10. 7. 00:54ㆍ소설들 보관자료/나락의 끝에서 보는 것
한 없이 나약한 존재 인간.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 처럼 헤어나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 나락의 수렁에 몸을 던진다.
그 누가 인간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하던가. 누가 그리 말하던가…
태초에 신이 있었다 하더라.
그 신은 흙으로서 사람을 빚고 숨결로서 생명을 불어 넣었다 하더라.
또한 기적을 일으키고 신에 가까운 모습으로서 죄를 그리고 용서를 부여하고 삶을 살게 했다 하더라.
자 그럼 당신에게 묻는다.
지금, 신은 당신의 부름에 응하는가?
지금, 당신의 눈가에 흐르는 붉은 핏물은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왜 무엇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가………
─ 전편 마지막 부분 이야기 ─
'빌어먹을 신. 하느님? 웃기지마. 내가 이렇게 아파하고 이렇게 상처받고 이렇게 죽을만큼 힘겨워하는데 네가 해준게 뭐가 있지? 어린양을 구원한다며… 난 왜… 나는 왜 신마저 도와주지 않는거야…… 신따위 없어… 하느님 따위… 있었다면 날 이렇게 고통 스럽게 하지 않았어야지… 그래야 하잖아!… 하느님이라는 존재마저 위선자!…위선자!…위선자!!…'
"빌어먹을 하느님 따위!!! 이리 나와봐!!! 내가!!… 내가!!… 죽여버릴꺼야!!!!"
아이의 마음 한구석은 그날 그렇게 또 한부분이 부셔진 마리오네트 마냥 부셔저 내렸다.
- 띠─
밖과 집의 영역을 구분하는 철문. 그 철문의 옆 벽면에 달려있는 부저를 누르자 부저는 밖에 들릴정도로 울려온다. 이윽고 안쪽에서 마룻바닥에 발을 구르는 소리가 난 뒤 스피커를 통해 음성이 들려온다.
- "누구세요?"
낮익은 목소리. 어린 목소리까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로 보아 동생이 있는 듯 하지만, 그 외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부모님들은 외출을 하셨으리라. 세드는 가볍게 스피커쪽으로 고개를 돌려 답했다.
"응… 나야 세드…"
'찰칵' 이라는 소리와 함께 대문에 연결되어 있는 잠김기능이 풀렸다. 끼리릭 쇠 마찰음을 울리며 대문은 버겁게 열려졌다.
"컴퓨터 고쳐달라던 것 때문에 왔어. 조금은 빨리 왔을까? 괜찮지?"
"응"
자신이 골치를 썩이고 있는 문제를 고쳐준다는 사람이 오는 것에 대해 마다할 사람은 없으리라. 소년의 친구역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예정이라도 되어있는 듯이 둘은 컴퓨터가 놓여져있는 소년의 친구의 방으로 발을 옮겼고, 짧은 머리의 친구의 남동생 역시 궁금한듯 쪼르르 따라들어왔다.
이윽고 친구는 세드에게 다른 이야기도 없이 직접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법도 하지만, 그런것도 없이 친구는 세드에게 이야기를 했고, 친구와 많이 어울려본 적 없던 세드는 그러한 대화가 없는 것에 대한 의문점도 품지 못한 채 그저 컴퓨터를 손보기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하고 이 문제는 또 이렇게 해결하면 될까?…'
어느센가 세드는 자신의 친구가 될지도 모를 이 친구의 컴퓨터를 잘 고쳐주고 이야기라도 한마디 더 나눠볼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고쳐주기 시작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친구의 동생은 이리저리 작은 몸을 이끌고 돌아다니고 있었고, 계속 바라보기가 지루했던지 자리를 지켜주거나 신경써줘야할 친구마저 자리를 비우고 TV를 보거나 동생을 달래주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됬다!'
이윽고 세드는 친구를 불러 정상적으로 고쳐놓은 컴퓨터를 보여주고 어떻게 하면 잘 쓸수 있는지까지 자신이 신경써 줄수 있는 만큼 최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친구를 만들 수 있을꺼라는 기대를 품고서.
세상은 자신이 바라는대로 흘러가지 못한다. 때때로 이것을 피해가는 사람이 소수 있긴 허나, 일반적으로서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통하는 진실이다. 어리디 어린 세드 역시 이 룰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까지는. 잘 어울려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는 될 수 있으리라. 자신이 준 도움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하리라. 많은것을 바라지 않았다. 단지 자신에게는 함께 어울려주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던 친구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단지 평범할 수 있길 바라면서. 중학교에 들어와 그 일을 보기 전까지는.
"야야야, 너 혹시 세드라는 아이 알아?"
"아니, 계가 누군데?"
"아, 그것도 몰라? 계 완전 병신이야, 완전 거지에 아빠도 없고 졸라 맘에 안드는 새끼야."
"그래? 어떻게 생긴앤데?"
"일단 잘해주지마 친해지지도 말고, 괜히 신경써서 말려들면 피곤해져 알았지?"
그 이야기의 가운데에는 자신이 친구가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었던. 자신이 컴퓨터를 고쳐주기 위해 노력했던 친구가 서있었다. 그것은 작은 꼬마에게 있어서 커다란 충격이었다. 믿기 싫은 현실이었다. 수긍하고 싶지 않았다.
'왜?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나에게 이러는 거야?'
'네가 바라던 컴퓨터도 고쳐줬잖아…'
'난 그저 친구가 생기길 바란 것인데, 그것 마저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거야?'
세드는 조용한 곳으로, 한적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면 다시 놀림받고 괴롭힘 당한다. 약한 모습을 보여 또 아픔을 격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사람이니까 아픔과 괴로움을 느끼는 인격체니까. 자신이라고 철인은 아니다. 자신도 상처를 받는다. 왜 주변은 항상 나를 다치게 하는것일까?
눈물은 결국 고이다 넘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역시나 세상은 나의 작은 바램조차 들어주지 않아.'
소년 세드의 머리속에서는 그러한 생각만이 가득 차 맴돌았다. 항상 자신을 괴롭히던 초등학교적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을 부정하던 아버지란 존재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을 가장 예뻐해주고 사랑스러워 해주던 고모가 돌아가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을 지하철역에 버렸던 아버지란 존재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세상은 세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한들 무엇하나 세상은 바뀌지 않아…'
이 넓은 세상에서 세드는 극히 작은 존재에 불과 했다.
'머지않아 잊혀져 없는 존재 처럼 기억속에서 지워져가겠지. 역사속에서 나 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진 않겠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 바빴다. 타인을 신경쓸 여유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소년 세드의 마음속에서는 뜨거운 용암이 이는 것처럼 갑갑해져왔다.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많은것을 바란것도 아니였는데, 세상은 그것조차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있는것을 부정하려 했다. 그렇다면 사라지자. 소년 세드는 어느순간엔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죽음의 강을 향한 길을 찾아 걷고 있었다.
이제껏 세드는 보이지 않게 다양한 자살시도를 해온 세드였다. 물속에 머리를 묻고 숨이 막혀 물을 먹어 비몽사몽해질 때까지 버티기도 했고, 높다고 생각되는 높이에서 등으로 떨어지기도 해봤다. 하지만 숨이 막힘과 동시에 이윽고 '아 이제 죽는구나' 라고 생각할때면 다시금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해 죽는다는 단지 그것조차도 마음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세드는 죽는 방법을 찾았다. 사라지는 방법을 찾았다. 보다 빨리 신이라는 녀석이 있으면 만나 멱살을 부여잡고 묻고 싶었다. 난 왜이렇게 힘이 들어야 하냐고. 힘이 들어야 했냐고.
왜 자신은 피폐하고 모든것이 무너진 폐허보다 더한 모습으로 느끼며 살아와야 했냐고. 그리고 신이라면 그 잘난 성경에서 나오는 것처럼 다시한번 살아나 보라고. 자신이 삼지창으로 목을 꿰 찔러 죽여줄테니 다시 한번 살아나 자신의 눈앞에서 신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따지고 싶었다.
'많은걸 바라진 않았잖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차차 몸은 죽음에 가까워져감을 느끼고 있었다. 괴롭다. 아프다. 힘들다. 하지만 여태껏 지속적으로 아파오고 괴로웠던 것에 비하면 이 아픔은 한순간이리라…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영겁의 끝나지 않은 어둠이 찾아오고 자신은 줄곳 그곳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채 사라져갈 것이라고.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있으면 끝난다. 그렇게 생각했다.
"세드야? 있잖아, 엄마는 많이 아팠잖아. 폐결핵을 걸리고, 먼저 나았던 딸을 이 세상에서 잃어버리고. 정말이지 엄마는 더이상 자식을 가져볼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어."
생각치도 않았던 기억이 세드의 기억속에서 떠올랐다. 갑자기 육체적 아픔보다 더 아프게 가슴이 아파온다.
"그런데 엄마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을 생각치도 못한 보물을 얻었단다. 그게 뭔지 아니?"
떠 올리기 싫은데,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떠오른다. 매번 그랬다. 죽으려고 하고, 죽음에 가까울 때마다 무언가가 자신을 가로 막는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가 자신을 가로 막는것 같았다. 차라리 보이면서 자신과 어울려준다면 이젠 그 대상이 귀신이라도 좋았다.
"바로 너와 네 동생이란다. 더 이상 가질 수 없다고 생각 했던 아이를 기적처럼 엄마는 가졌어"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 짐이 느껴진다.
"그래서 때로는 네 아버지가 밉지만 이런 보물을 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단다."
이것만큼은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수 없지만 눈물은 다시 마음속에서 마저 마음의 상처를 타고 흘렀다. 단신으로 자신과 동생을 키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때때로는 눈물을 몰래 훔치시면서도 자신을 키우던 모습. 이미 어머니도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인데, 자신이 또 다시 커다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어야 하는지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평생 가슴에 묻고 죽을 때 까지 가져간다고 들었다. 그것은 영영 지울 수 없는 못을 어머니의 가슴에 박아버리는 것이 아닐까?
가슴 속에서, 마음속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자신도 울고 있는지 몰른다. 실제의 자신은 단지 괴로울 뿐이니까.
"나는 나의 아들을 믿는다. 그리고 나의 딸을 믿는다"
다시금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소년 세드는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동안만큼만 살아있자. 최소한 죽더라도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 본 뒤에나 하자.'
결정을 내리자 육체와 정신은 누군가가 끌어올리듯 빛을 향해 끌어올려졌다.
# 죽음을 앞두고 선택하는 것을 마치며…
미련을 버리고 삶을 포기하기란. 어렵지만 쉬운것이고 쉽지만 어려운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고 당신을 절벽 끝으로 밀어 넣어 삶을 포기하기를 권유하며 당신을 시험한다. 그러한 현실 속에 당신은 "더 이상 나는 가진 것이 없을 정도로 몰아 붙여졌다.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것을 잃었다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로 바라볼 수도 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면, 이제부터 행하는 모든 행위는 얻기위한 행위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중에 이러한 가사가 있다.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벌은 건졌잖소"
잘 찾아보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말 없이 바라봐 주지만 분명 그 사이에 따듯함을 간직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장 쉽게는 자신의 부모에서부터. 연인, 정말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까지. 아직 남은 무엇인가가 남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세드는 부모에게 버려졌지만, 부모에게 삶을 구원받는다. 아버지라는 부모에게 버려지고 어머니라는 부모에게 구원을 받는 식의 모습이 그려졌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잡을 수 있는 내용이 되길 빌어본다.
이번 소설에서는 부모가 했던 말을 계기로 죽음의 끝까지 다가가다가 되돌아오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소설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어두울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어두움 속에서 한가지 희망을 그려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의 제목을 정해봤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는 판타지형으로 넘어갈지 나 자신만의 그냥 형식 구분없는 소설을 만들어볼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지만, 어떠한 방식으로 가건간에 이 소설에서는 추악하고 절망적으로 가는 이야기 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살짝 그리는 그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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